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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orenbild서선영

전승 1 화타전(華佗傳)

Aktualisiert: 3. Sept. 2020




화타전(華佗傳)

화타는 그의 학문과 의술이 뛰어난 당대의 명의였으나 그의 운명이 기구하여 전해지는 것이 별로 없다. 후대에 그를 안타까워하는 자들은 많으나 그의 업적을 들어내어 칭송할 것을 찾지 못한다. 나는 그의 빈소에 향을 피우는 마음으로 이 글을 옮긴다.


《한글》

1. 화타의 자는 원화이고 패나라 초현사람인데 이름을 부라고도 하였다. 화타는 서주 일대에 가서 유학하였는데 여러 가지 경서를 겸하여 정통하였다. 패나라 승상 진규가 그를 효렴으로 천거하였고, 태위 황완도 그를 불렀지만 다 가지 않았다. 화타는 양생의 방법을 잘 알았는데 당시 사람들은 그의 나이가 백세에 가까운 줄로 알았으나 외모를 보면 장년의 모습이었다. 그는 또 의술과 약물에 대해 매우 정통하였는데 병을 치료할 때 탕약을 수종의 약종만으로 배합하였고 약물의 분량과 여러 가지 약을 배합하는 비율에 대해서도 심중에 무게가 있었을 뿐 다시 무게를 달지 않았다.약을 달인 후에는 지체하지 않고 환자에게 복용시키고 주의사항을 알려주었다. 환자가 약을 먹은 후 화타가 그곳을 떠나면 환자의 병은 언제나 나앗다. 만약 뜸을 떠야 할 경우면 한, 두 개의 혈 밖에 취하지 않았고 매개 혈에 칠팔 장만 떴는데 병은 곧 제거되었다. 만약 침을 놓아야 할 경우면 역시 한 두 개의 혈밖에 취하지 않았고 침을 놓을 때 환자에게 〈반응이 어느 부위까지 이르는가 알려 주시오!〉 라고 당부하고 환자가 〈에 이르렀습니다.〉고 말하면 곧 침을 뽑았는데 미구에 병도 차도가 있게 되었다. 만약 병이 체내에 쌓이어 침과 약이 모두 이르지 못할 사람이면 그에게 마비산을 복용시켰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술에 푹 취한 것과 같아 지각이 없게 되었다. 이때 병 부위를 가르고 베어 냈다. 병이 만약 창자에 생기게 되면 곧 창자를 가르고 깨끗이 씻은 후 복부를 봉합하고 고약을 발랐는데 사오일이면 낫게 되었고 아프지 않았으며 병자 자신은 이 모든 것을 느끼지 못하였다. 수술한 후 한 달이면 완전히 회복되었다.


2. 관청에 관리인 예심과 이연이 함께 찾아 왔는데 모두 두통과 신열이 났다. 그들이 고민하는 병은 똑 같았다. 화타는 〈예심은 설사를 하게 해야 하고, 이연은 땀을 내게 해야 합니다.〉라고 하였다. 어떤 사람이 화타의 치료방법이 다른 것에 대하여 이해하기 어려워하니까 화타가 이르는데 〈예심은 외모가 튼튼하나 병이 체내에 있고, 이연은 체내가 튼튼하나 병이 체표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을 치료하는 방법도 달라야 합니다.〉라고 하였다. 말을 마친 후 즉시 그들에게 약을 주었는데 이튿날 아침에 모두 일어났다.


3. 화타는 길을 가다가 목구멍이 메어 고생하는 사람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 환자는 음식을 먹고 싶어도 넘기지 못하였다. 이리하여 그의 집 사람들은 그를 수레에 태워 의사를 찾아가고 있는 중이었다. 화타는 그의 신음소리를 듣고 수레를 세우고 그의 앞에 다가가 보더니 그에게 이르기를〈방금 오던 길옆에 구운 떡을 파는 집이 있는 것을 보았는데 그 집에 짓찧은 마늘에 초를 넣어 만든 시큼한 양념이 있을 것이니 그것을 3승 달라 하여 먹으면 병이 저절로 나을 것입니다.〉라고 일러 주었다. 병자가 속히 화타의 말대로 하였더니 그 자리에서 뱀과 같이 생긴 기생충 한 마리를 토하였다. 병자는 그것을 수레 옆에 걸어 놓은 후 화타를 찾아가려 하였다. 이때 화타는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는데 한 아이가 문 앞에서 놀다가 그것을 바라보면서 중얼거리기를 〈아마 나의 아버지를 만났을 것이다. 수레 옆에 기생충이 이러함을 증명하고 있다.〉. . . 환자가 집에 들어가 앉은 후 화타의 집 북쪽 벽에 걸어놓은 이와 같이 생긴 기생충들을 보게 되었는데 아마 십의 단위로 헤아려야 할 것 같았다.


4. 또 한 군수가 병에 걸렸는데 화타는 그가 크게 화(怒)를 내면 병이 나을 것이라고 일러 주었다. 이리하여 그는 재물을 많이 받은 후 더 치료해 주지 않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병자를 버리고 떠나 버렸다. 떠날 때 편지를 남기어 그를 꾸짖기까지 하였다. 군수는 과연 대노하여 사람을 시켜 화타를 쫓아가 붙잡아 죽이게 하였는데 군수의 아들이 이 일을 알고 파견된 사람에게 쫓지 말라고 분부하였다. 군수는 과연 크게 노하더니 검은 피 몇 승을 토한 후 병이 나았다.


5. 또 한 사대부가 몸이 개운하지 못했는데 화타는 그를 보고 〈당신의 병은 매우 심하므로 배를 가르고 떼어내야 합니다. 그러나 당신의 수명도 십년을 넘기지 못할 것이며 병도 당신을 죽게 할 수는 없을 것이므로 병통(病痛)을 10년 참아도 병과 수명이 다 같이 결속 될 것이니 일부러 복부를 가를 필요는 없습니다.〉라고 하였다. 사대부는 고통을 참기 어려워 기어코 질환을 제거하려 하였다. 이리하여 화타는 곧 손을 대었는데 병이 얼마 지나지 않아 차도가 있었다. 그러나 10년 후에 끝내 죽게 되었다.


6. 광릉태수 진등이 병을 얻었는데 가슴이 번거롭고 답답해지고, 얼굴색이 붉어지면서 음식이 당기지 않았다. 화타는 진맥하고 나서 〈당신의 위에 기생충이 몇 승 있는데 내부의 악성 종기로 변할 것입니다. 이는 비린 음식을 먹었기 때문에 얻은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화타는 즉시 탕약 2승을 조제한 후 먼저 1승을 복용시키고 잠시 후에 나머지를 복용시키었다. 한식경이 지나 3승 가량 되는 기생충을 토했는데 그 기생충들은 머리가 붉은 색이고 모두 꿈틀거리고 있었다. 기생충들의 반신은 생선회와 같았다. 이리하여 고통스럽던 병이 즉시 나았다. 화타는 〈이 병은 3년 후 또 발작할 것인데 의술이 고명한 의사를 만나야 살 수 있습니다.〉라고 하였다. 진등의 병은 과연 기한대로 발작하였는데 당시 화타가 없었으므로 예언과 같이 죽게 되었다.


7. 위태조는 화타의 소문을 듣자 화타를 불러 갔다. 이리하여 화타는 늘 그의 신변에 있게 되었다. 태조는 두통병으로 고생하였는데 매번 발작하면 심란해지고 눈앞이 어지러웠다. 화타가 격수혈(膈兪穴)에 침을 놓으면 곧 나았다.


8. 이(李) 장군의 처가 병이 심하여 화타를 불러 진맥하게 하였는데 화타가 진맥을 본 후 말하기를〈임신에 손상을 받았는데 태아가 나오지 않았습니다.〉라고 하였다. 이 장군이〈임신에 손상을 입었다는 말은 확실하게 들었으나 태아는 이미 나왔습니다.〉라고 하니 화타는 〈맥상에 의하면 태아가 나오지 않았습니다.〉라고 하였다. 장군은 못마땅해 하였다. 화타가 병자를 두고 떠난 후 부인의 병은 점점 차도가 있었다. 그러나 백 여일이 지나 또 발작하게 되어 다시 화타를 불러 갔다. 화타는 역시 진맥을 본 후에〈이 맥은 원래의 정황과 마찬가지인데 확실히 태아가 있습니다. 전번에 본래 두 아이를 낳아야 할 것인데 한 아이가 먼저 나온 후 산모가 피를 너무 많이 흘렸으므로 마지막 아이가 미처 나오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산모 자신이 이것을 감촉하지 못하고 옆에서 접생(간호)하는 사람도 알아차리지 못하여 더 이상 접생하지 않았으므로 출생하지 못한 것입니다. 태아가 죽은 후 혈액이 다시 태아의 몸에 순환할 수 없었으므로 마르게 되어 모체의 등 쪽으로 가서 붙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임신부로 하여금 늘 척추에 통증이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 환자에게 탕약을 주고 침을 한 곳에 놓게 되면 죽은 태아가 필시 나오게 될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탕약을 먹이고 침을 놓자 임신부는 동통이 심했는데 마치 곧 해산하려는 것 같았다. 화타는〈죽은 태아는 오랫동안 말랐으므로 나올 수 없으니 사람을 시켜 손으로 끄집어내야 하겠습니다.〉라고 하였다. 과연 이미 죽은 남자 태아를 끄집어내었는데 손과 발이 완전하고 색깔이 검었으며 신장(身長)이 한자가량 되었다.


9. 화타의 절묘한 의술은 대체로 보아 이와 같은 것들이다. 그러나 그는 본래 선비였는데 후에 의술로써 업적을 쌓게 된 것으로 하여 늘 마음속으로 자신을 후회하군 하였다. 훗날 위나라 태조는 친히 조정의 정사를 처리하였는데 이로 인하여 얻은 병이 중하게 되자 화타로 하여금 오로지 자기 병만 보게 하였다. 화타는 〈이 병은 가까운 기일 안에는 효과를 보기 어렵기 때문에 꾸준히 치료해야 하니 시일이 오래 걸릴 것입니다.〉고 하였다. 화타는 오랫동안 집을 멀리 떠나 있은 지라 집으로 돌아갈 생각이 났다. 이리하여 태조에게 〈방금 집에서 온 편지를 받았는데 잠시 다녀가라 합니다.〉고 하였다. 집에 이른 후에는 처가 앓는다는 핑계로 여러 번 기한을 늦춰줄 것을 요구하고 돌아가지 않았다. 태조는 수차 문서로써 그를 불렀고 또 군현에 명령하여 그를 보내게 하였다. 그러나 화타는 자기의 재능을 믿었고 한편 봉록을 먹는 일에 대해 싫증이 났으므로 여전히 떠나지 않았다. 태조는 크게 노하여 사람을 파견해서 그곳에가 조사하게 하였다. 만약 화타의 처가 확실히 병이 있으면 팥 40곡을 주고, 제안한 휴가일을 늦춰 주게 하고 만약 그가 속였다면 곧 체포하여 압송해 오라 하였다. 이리하여 그를 허창의 감옥에 압송한 후 고문하고 심의하면서 자백하게 하여 죄를 인정하도록 하였다. 이때 순욱이 간하기를〈화타의 의술은 확실히 고명해서 사람의 생명을 건지고 있으니 그를 너그러이 용서해야 할 줄로 압니다.〉라고 하자 태조는 〈근심할 것 없네, 천하에 이와 같은 천한 놈이 또 없겠는가?〉고 하였다. 이리하여 옥중에서 화타는 살해되었다. 화타가 임종 직전에 책 한권을 꺼내어 옥리에게 주면서〈이 책은 사람을 살릴 수 있습니다.〉고 하였다. 그러나 옥리는 법이 두려워 받지 않으므로 화타는 강요하지 않고 불을 요구하여 그것을 태워 버렸다. 화타가 죽은 후 태조의 두통병은 여전히 근절하지 못하였다. 태조가 말하기를〈화타는 이 병을 치료할 수 있었으나 이소인은 나의 병을 키움으로써 자기를 높이려 하였다. 만약 내가 이자를 죽이지 않았다 해도 끝까지 나를 위해 이 병의 근원을 근절하지 않았을 것이다.〉고 하였다. 후에 이르러 사랑하는 아들 창서가 병이 위급하게 되어서야 태조는 탄식하며〈나는 화타를 죽인 것이 후회된다. 결국은 이아들이 생떼같이 죽게 되는 군아〉라고 하였다. 다른 일설에 의하면 옥리가 법이 두려워 화타의 제안에 주저했던 것은 사실인 것 같으나 여기서 말하는 것과는 많이 다르다. 오히려 이보다는 사실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명의의 책(竹簡)이고 보면 그 부피가 간단치 않았을 것이고 죄인이 된 화타로썬 간방에서 불을 달라하여 사사로이 사용할 처지도 못되었을 것이며 그 책이란 것이 죽간(竹簡)이라 품에 지니고 다닐 수도 없는 것이므로 이 일의 전말은 이러 했을 것이다. 화타가 처형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옥리는 이때다 싶어 조심 또 조심스럽게 묻고 물어서 화타의 집을 찾아 나섰다. 몇날 며칠 후 어느 장소에 이르렀을 때의 일이다. 한 아낙이 마당에서 모닥불을 피워놓고 대성통곡을 하는데 그 소리가 예사롭지 않아 들어보니 이러 하드라 〈아이고~ 아이고~ 많이 배운들 무슨 소용이드냐?! 이렇게 허무할 바에야 아니 배웠다면 한탄할 일이야 있었겠느냐?! 아이고~ 아이고~ 관작도 마다하고 고향땅에서 농사 짖고, 약초심어 찾아오는 환자 고쳐주며 조용히 살고자한 것이 죽을죄라더냐?! 금쪽같은 내 남편 화타가 생떼같이 죽 었 군아 아이고~ 아이고~ 네 이~노~옴 조조야! 내 비록 힘없는 아녀자 이다 만은 네놈을 평생에 원수로 삼으리라! 아이고~ 아이고~〉옥리가 이상타 싶어서 듣고 보니 이게 무슨 소리냐?! 또 저 태우고 있는 죽간이. . . 혹시 화타의 의서?. . . 한발 닥아 서며 말을 묻고자 하니 아낙이 코 범벅이 된 얼굴을 받쳐 들고 부지깽이로 경계를 세우며 호통을 친다. 〈이보시오 당신도 남은여생 순탄하자면 이 근처랑 얼씬 마시오!〉 옥리는 이 이상 물러설 처지가 못 되었다. 아낙의 부지깽이를 낙아 채어 타들어가는 죽간을 허공에 집어 들어 땅바닥에 메치니 불꽃과 연기가 먼지 속으로 흩어지는데 물을 부어 건져보니 “아~ 가련 코 가련 토다.” 그 묘서는 모두 재가 되었고 있어도 없는 것과 다를 바 없고, 없다 한들 아까울 것 없는 침술 협척(夾脊)만이 달랑 남았 군아!이것이 오늘까지 전해오는 유일한 화타협척(華佗夾脊)이란 침술이다. 옥리가 발길을 돌리며 생각한다. 불지에 팔자 한번 바꾸어 볼까 했더니 사라진 연기가 되었 군아. . . 조조에게 돌아간들 무슨 영화가 있으랴?! 불길 하군아! 그는 끝내 어디론가 사라졌다. - 상황이 이러 했을 것이다.


10. 전에 군중의 관리였던 이성은 해수로 고생하였는데 밤낮 잠을 이룰 수 없었고 늘 농혈을 토하였다. 이리하여 화타에게 그 원인을 물었다. 화타는〈당신은 충양돌기염에 걸렸는데 기침을 할 때 토한 농혈은 폐에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당신에게 가루약 2돈을 주겠으니 토한 후 시원한 감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다음 스스로 몸조리하면 한 달 안에 작은 호전이 있을 것이고 계속 몸조리를 조심하면 일 년 후에는 건강을 회복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18년 후에 작게 발작할 것인데 이 가루약을 복용하면 점차 다시 낫게 될 것입니다. 만약 이약을 얻지 못한다면 꼭 죽게 됩니다.〉고 하였다. 화타가 또 가루약 2돈을 주니 이성은 약을 얻어 가지고 떠났다. 오륙년 후에 친척중의 한사람이 이성과 같은 병에 걸리었다. 이리하여 이성을 보고 〈경은 지금 건강하지만 나는 곧 죽게 되었으니 어찌 차마 급병이 없이 약을 보관해 두고 나의 불행을 기다릴 수 있단 말입니까? 먼저 약을 꿔주면 제가 병이 나은 후 경을 대신하여 화타에게 가 다시 구해 오겠습니다.〉라고 하였다. 이성은 약을 그에게 주었다. 사후에 일부러 초현에 갔는데 마침 화타가 체포되어 바쁜 때라 차마 그에게서 약을 요구할 수 없었다. 화타는 끝내 처형당하고 18년 후 이성의 병은 재발하였는데 먹을 약이 없어 죽게 되었다.


11. 광릉의 오보와 팽성의 번아는 모두 화타에게서 배웠다. 오보는 화타의 치료 방법대로 치료하였는데 대다수가 구원되었다. 화타는 오보에게〈인체는 운동을 하여야 하는데 다만 신체로 하여금 너무 과분하지 않아야 할 뿐이네, 운동을 하면 먹은 음식이 소화되고 혈맥이 잘 통하므로 병이 날 수 없는데 예하면 문지도리가 녹 쓸지 않는 것은 바로 이 도리일세, 그러므로 고대의 장수(長壽)한 사람들은 도인과 같은 운동을 하였는데 마치 곰처럼 곧게 서서 허리를 펴기도 하고 새매처럼 뒤를 돌아보기도 하며 허리와 몸을 굽혔다 피면서 모든 관절을 움직임으로써 일찍 노쇠하지 않도록 하였다네, 나에게는 한 가지 방법이 있는데 그 이름을 오금희(五禽戲)라고 하네, 첫 번째는 호희, 두 번째는 녹희, 세 번째는 웅희, 네 번째는 원희, 다섯 번째는 조희일세, 이 역시 질병을 제거할 수 있고 다리와 발에 이로우며 고인들의 “도인”을 대체할 수 있다네, 신체가 개운하지 않을 때에는 일어나 한 가지 운동의 유희를 하면 후줄근히 땀이 나는데 이어 분을 바르면 신체가 가벼운 감이 나고 배가 고파지네.〉라고 하였다. 오보는 화타가 말한 방법대로 했는데 나이가 90여세였지만 귀와 눈이 밝았고 치아가 완전하고 견고하였다.번아는 침을 놓는 기술이 고명하였다. 일반적으로 의사들은 모두 등, 가슴 및 오장과 관계되는 부위에 되는대로 침을 놓아서는 안 되며 이런 부위에 침을 놓을 때에는 침을 꽂는 심도가 4푼을 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번아는 등에 침을 놓을 때 1-2치 깊이로 꽂았으며 거궐, 가슴과 오장에 침을 놓을 때에도 5-6치 깊이로 꽂았지만 병은 언제나 다 나았다.번아가 화타에게 먹을 수 있고 사람에게 유익한 약방을 요구하니 화타는 칠엽청접산을 소개해 주었다. 칠엽 부스러기 일승, 청접 부스러기 14냥의 비율로 하였다. 이것을 장기간 복용하면 세가지 기생충을 없앨 수 있고, 오장에 유익하며 몸을 가볍게 할 수 있고 사람의 머리가 희어지지 않게 할 수 있다고 하였다. 번아는 그의 말대로 하였는데 수명이 백 여세나 되었다. 칠엽은 어디든지 있고 청접은 풍, 패, 팽성 및 조가에서 자란다.








華佗傳(화타전)

1. 華佗字元化(화타자원화) 沛國譙人也(패국초인야) 一名敷(일명부). 游學徐土(유학서토), 沛相陳珪擧孝廉(패상진규거효렴) 太尉黃琓辟(태위황완벽) 皆不就(개불취). 曉養性之術(효양성지술) 時人以爲(시인이위) 年且百歲(년차백세) 而貌有壯容(이모유장용). 又精方藥(우정방약) 其療疾(기료질) 合湯不過數種(합탕불과수종) 心解分劑(심해분제) 不復稱量(불복칭량) 煮熟便飮(자숙편음) 舍去輒愈(사거첩유). 若當灸(약당구) 不過一兩處(불과일량처)每處不過七八壯(매처불과칠팔장) 病亦應除(병역응제). 若當針(약당침) 亦不過一兩處(역불과일양처) 下針言(하침언) “當引某許(당인모허) 若至語人(약지어인)” 病者言(병자언) “已到(이도)” 應便拔針(응편발침) 病亦行差(병역행차). 若病結積在內(약병결적재내) 針藥所不能及(침약소불능급) 當須刳割者(당수고할자) 便飮其麻沸散(편음기마비산) 須臾便如醉死(수유편여취사) 無所知(무소지) 因破取(인파취). 病若在腸中(병약재장중) 便斷腸湔洗(편단장전세) 縫腹膏摩(봉복고마) 回五日差(회오일차) 不痛(불통) 人亦不自寤(인역불자오) 一月之間(일월지간) 卽平復矣(즉평복의).


2. 府吏兒尋(부리아심) 李延共止(이연공지) 俱頭痛身熱(구두통신열) 所苦正同(소고정동). 佗曰(타왈) “尋當下之(심당하지) 延當發汗(연당발한)” 或難其異(혹난기이) 佗曰(타왈) “尋外實(심외실) 延內實(연내실) 故治之宜殊(고치지의수).” 卽各與藥(즉각여약) 明旦並起(명단병기).


3. 佗行道(타행도) 見一人病咽塞(견일인병인색) 嗜食而不得下(기식이불득하) 家人車載欲往就醫(가인거재욕왕취의). 佗聞其呻吟(타문기신음) 駐車往視(주차왕시) 語之曰(어지왈) “向來道邊有賣餠家(향래도변유매병가) 蒜齏大酢(산제대초) 從取三升飮之(종취삼승음지) 病自當去(병자당거).” 卽如佗言(즉여타언) 立吐蛇一枚(입토사일매) 縣車邊(현차변) 欲造佗(욕조타). 佗尙未還(타상미환) 小兒戲門前(소아희문전) 逆見(역견) 自相謂曰(자상위왈) “似逢我公(사봉아공) 車邊病是也(차변병시야).” 疾者前入坐(질자전입좌) 見佗北璧縣(견타북벽현) 此蛇輩約以十數(차사배약이십수).


4. 又有一郡守病(우유일군수병) 佗以爲其人(타이위기인) 盛怒則差(성노칙차) 乃多受其貨而不加治(내다수기화이불가치) 無何棄去(무하기거) 留書罵之(유서매지). 郡守果大怒(군수과대노) 令人追捉殺佗(령인추착살타). 郡守子知之(군수자지지) 屬使勿逐(속사물축). 守瞋恚旣甚(수진에기심) 吐黑血數升而愈(토흑혈수승이유).


5. 又有一士大夫不快(우유일사대부불쾌) 佗云(타운) “君病深(군병심) 當破腹取(당파복취). 然郡守亦不過十年(연군수역불과십년) 病不能殺郡(병불능살군) 忍病十歲(인병십세) 壽俱當盡(수구당진) 不足故自刳裂(부족고자고열).” 士大夫(사대부) 不耐痛癢(불내통양) 必欲除之(필욕제지). 佗遂下手(타수하수) 所患尋差(소환심차) 十年竟死(십년경사).


6. 廣陵太守(광릉태수) 陳登得病(진등득병) 胸中煩懣(흉중번만) 面赤不食(면적불식). 佗脈之曰(타맥지왈) “府君胃中(부군위중) 有蟲數升(유충수승) 欲成內疽(욕성내저) 食腥物所爲也(식성물소위야).” 卽作湯二升(즉작탕이승) 先服一升(선복일승) 斯須盡服之(사수진복지). 食頃吐出三升許蟲(식경토출삼승허충) 赤頭皆動(적두개동) 半身是生魚膾也(반신시생어회야) 所苦便愈(소고편유).佗曰(타왈) “此病後(차병후) 三期當發(삼기당발) 遇良醫乃可濟救(우량의내가제구).” 依期果發動(의기과발동) 時佗不在(시타불재) 如言而死(여언이사).


7. 太祖聞而召佗(태조문이소타) 佗常在左右(타상재좌우). 太祖苦頭風(태조고두풍) 每發(매발) 心亂目眩(심란목현) 佗針鬲(타침격) 隨手而差(수수이차).


8. 李將軍妻病甚(이장군처병심) 呼佗視眽(호타시맥) 曰(왈) “傷娠而胎不去(상신이태불거).” 將軍言(장군언) “聞實傷娠(문실상신) 胎已去矣(태이거의).” 佗曰(타왈) “案脈(안맥) 胎未去也(태미거야).” 將軍以爲不然(장군이위불연). 佗舍去(타사거) 婦稍小差(부초소차). 百餘日復動(백여일복동) 更呼佗(갱호타) 佗曰(타왈) “此脈故事有胎(차맥고사유태). 前當生兩兒(전당생양아) 一兒先出(일아선출) 血出甚多(혈출심다) 後兒不及生(후아불급생) 母不自覺(모불자각) 旁人亦不寤(방인역불오) 不復迎(불복영) 遂不得生(수불득생). 胎死(태사) 血脈不復歸(혈맥불복귀) 必燥著母脊(필조저모척) 故使多脊痛(고사다척통). 今當與湯(금당여탕) 幷針一處(병침일처) 此死胎必出(차사태필출).” 果得一死男(과득일사남) 手足完具(수족완구) 色黑(색흑) 長可尺所(장가척소).

9. 佗之絶技(타지절기) 凡此類也(범차류야). 然本作士人(연본작사인) 以醫見業(이의견업) 意常自悔(의상자회). 後太祖親理(후태조친리) 得病篤重(득병독중) 使佗專視(사타전시). 佗曰(타왈) “此近難濟(차근난제) 恒事攻治(항사공치) 可延歲月(가연세월).” 佗久遠家思歸(타구원가사귀) 因曰(인왈) “當得家書(당득가서) 方欲暫還耳(방욕잠환이).” 到家(도가) 辭以妻病(사이처병) 數乞期不反(수걸기불반). 太祖累書呼(태조루서호) 又敕郡縣發遣(우칙군현발견). 佗恃能厭食事(타시능염식사) 猶不上道(유불상도). 太祖大怒(태조대노) 使人往檢(사인왕검) 若妻信病(약처신병) 賜小豆四十斛(사소두사십곡) 寬假限日(관가한일) 若其虛詐(약기허사) 便收送之(편수송지). 於是傳付許獄(어시전부허옥) 考驗首服(고험수복) 荀彧請曰(순욱청왈) “佗術實工(타술실공) 人命所縣(인명소현) 宜含宥之(의함유지).” 太祖曰(태조왈) “不憂(불우) 天下當無(천하당무) 此鼠輩耶(차서배야)?”遂考竟佗(수고경타). 佗臨死(타림사) 出一卷書與獄吏(출일권서여옥리) 曰(왈) “此可以活人(차가이활인).” 吏畏法不受(리외법불수) 佗亦不彊(타역불강) 索火燒之(색화소지). 佗死後(타사후) 太祖頭風未除(태조두풍미제). 太祖曰(태조왈) “佗能愈此(타능유차). 小人養吾病(소인양오병) 欲以自重(욕이자중) 然吾不殺此子(연오불살차자) 亦終當不爲我斷此根原耳(역종당불위아단차근원이).” 及後(급후) 愛子倉舒(애자창서) 病困(병곤) 太祖歎曰(태조탄왈) “吾悔殺華佗(오회살화타) 令此(령차) 兒彊死也(아강사야).”


10. 初軍吏李成苦欬嗽(초군리이성고해수) 晝夜不寤(주야불오) 時吐膿血(시토농혈) 以問佗(이문타). 佗言(타언) “軍病腸癰(군병장옹) 欬之所吐(해지소토) 非從肺來也(비종폐래야). 與軍散兩錢(여군산양전) 當吐二升(당토이승) 餘膿血訖(여농혈흘) 自養(자양) 一月可小起(일월가소기) 好自將愛(호자장애) 一年便健(일년편건). 十八歲當一小發(십팔세당일소발) 服此散(복차산) 亦行復差(역행복차). 若不得此藥(약불득차약) 故當死(고당사).” 服與兩錢散(복여양전산) 成得藥去(성득약거). 五六歲(오육세) 親中(친중) 人有病如成者(인유병여성자) 謂成曰(위성왈) “成與之(성여지). 已故到譙適値佗見收(이고도초적치타견수) 怱怱不忍從求(총총불인종구). 後十八歲(후십팔세) 成病竟發(성병경발) 無藥可服(무약가복) 以至於死(이지어사).


11. 廣陵吳普(광릉오보) 彭城樊阿(팽성번아) 皆從佗學(개종타학). 普依準佗治(보의준타치) 多所全濟(다소전제). 佗語普曰(타어보왈) “人體欲得勞動(인체욕득노동) 但不當使極爾(단부당사극이). 動搖則(동요칙) 穀氣得消(곡기득소) 血脈流通(혈맥유통) 病不得生(병불득생) 譬猶戶樞(비유호추) 不朽是也(불후시야). 是以古之(시이고지) 仙者爲導引之事(선자위도인지사) 熊頸鴟顧(웅경치고) 引輓腰體(인만요체) 動諸關節(동제관절) 以求難老(이구난노). 吾有一術(오유일술) 名五禽之戲(명오금지희) 一曰虎(일왈호) 二曰鹿(이왈록) 三曰熊(삼왈웅) 四曰猨(사왈원) 五曰鳥(오왈조) 亦以除疾(역이제질) 並利蹄足(병리제족) 以當導引(이당도인). 體中不快(체중불쾌) 起作一禽之戲(기작일금지희) 沾濡汗出(첨유한출) 因上著粉(인상저분) 身體輕便(신체경편) 腹中欲食(복중욕식).” 普施行之(보시행지) 年九十餘(년구십여). 耳目聰明(이목총명) 齒牙完堅(치아완견). 阿善針術(아선침술). 凡醫咸言(범의함언) 背及胸臟之間(배급흉장지간) 不可妄針(불가망침) 針之不過四分(침지불과사분) 而阿針背入一二寸(이아침배입일이촌) 巨闕胸藏針下五六寸(거궐흉장침하오육촌) 而病輒皆瘳(이병첩개추). 阿從佗求(아종타구) 可服食益於人者(가복식익어인자) 佗授以漆葉靑黏散(타수이칠엽청점산). 漆葉屑一升(칠엽설일승) 靑黏屑十四兩(청점설십사량) 以是爲率(이시위율). 言久服去三蟲(언구복거삼충) 利五臟(리오장) 輕體(경체) 使人頭不白(사인두불백). 阿從其言(아종기언) 壽百餘歲(수백여세). 漆葉處所而有(칠엽처소이유) 靑黏生於豊(청점생어풍) 沛(패) 彭城及朝歌云(팽성급조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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